2021. 10. 21. 18:21ㆍ검과 마법의 박물관/무기편
혼다 타다카츠
무기로서 미술품으로서 높은 위치에 있는 일본의 무기. 그 중에서도 특히 뛰어난 명검과 명창은 , 「천하5검」 「천하3창」등으로 불리고 있어 도검의 역사를 말하는데 빠뜨릴 수 없는 존재가 되었다. 본 연재에서도 지금까지 , 「일본호(니혼고)」 「대전태광세(오오텐다미츠요)」 「동자절안강(도우지키리야스츠나」등 소개했는데, 이번엔 천하3창에 주목 , 그 중에서 「청령절(톤보키리)」을 소개해본다.
우선은 소유자인 혼다 타다카츠(1548-1610)부터. 타다카츠는 , 미카와(아이치현)의 마쓰다이라 히로타다(이에야스의 아버지)의 가신·혼다 타다타카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아명을 나베노스케로 , 유소년기는 묘원사를 다니며 손자병법을 독파 , 창 단련도 적극적 행했다고 한다.
그리고 1559년에 성인식 때 혼다 헤이하치로타다카츠로 이름을 바꾼다. 덧붙여서 타다카츠라는 이름 , 「단지 이길뿐(타다카츠노미)」라는 의미로, 주군인 마츠다이라 모토야스(후에 도쿠카와 이에야스)가 붙인 것이라고 전하고 있다.
타다카츠는 이에야스와 함께 각지를 돌아다니며 싸웠다. 첫 출진인 오다카성 공격(1560년) 후 , 아네가와 전투 , 나가시노 전투 등 많은 곳에서 활약, 세끼가하라 전투(1600년)까지 통산 57회 전력을 쌓았다. 게다가 수많은 전투에서 최전선에서 싸웠음에도 불구하고 , 그 몸에 상처 하나 나지 않았다고 전하고 있다. 확실히 전국시대 최강 무인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그래선지 전국무쌍에선 최강캐릭터임)
최종적으로는 이세(미에현)에서 10 만석의 영주가 되어, 1609년에는 적남인 타다마사에게 물려주고 은거. 다음 해 그 생애를 마쳤다. 에도 막부 창업에 공헌함으로 , 후에 토쿠가와 사천왕/16신장 이라 칭해진다.
톤보키리(청령절- 잠자리 베기)
타다카츠는 흑사위동환구족(黑絲威胴丸具足-쿠로이토오도시도우마루구소쿠)를 착용 , 머리에는 사슴의 뿔을 붙인 녹각협입두(카즈노와키다테카부토)를 쓰고 있었다. 그리고 타다카츠가 휘두른 창이 톤보키리다.
톤보키리라는 이름은 , 타다카츠가 창을 세워놓고 쉬고있을 때 , 어디선가 잠자리 한마루기 날아 왔다. 그리고 창끝에 멈춰앉았나 생각했는데,그 잠자리는 두 조각이 나 버렸다는 일화에서 유래한다. 그 예리함은 아마도 대단히 뛰어날 것이다.
톤보키리의 제작자는 후지와라노 마사자네라고 전하고 있다. 마사자네은 도검 팬이라면 잘아는 무라마사 일파의 도공으로 , 미카와 문수(三河文殊-역자 주1)로 칭해진 사람이다. 또한 일반적으로 , 무라마사라고 하면 토쿠가와가에 해를 주는 칼이라 하지만, 실제로는 미카와를 중심으로 많이 유통된 도검이기 때문에(물론 질도 좋았고), 토쿠가와에 대한 적대세력도 많이 사용했기 때문에그런 말이 나왔는지 모르겠지만. 실상은 단지 많이 유통되괴, 좋은 도검을 썼을 뿐이다란 것이 진상이다.
흥미로운 점은 , 타다카츠는 상황에 따라 자루를 교환(교체)했다는 것이다. 처음엔 검은 칠된 1장 3척( 약 3.9미터)의 자루를 장착해 싸웠다고 하는데, 후에 히토코토자카(一言坂) 전투에서는 , 청패나전(靑貝螺鈿) 2장(약 6미터)의 자루로 교환해 싸웠다. 또 말년의 타다카츠는 자루를 짧게 해, 「창은 기량맞는 길이가 최고」라고 말하였고 , 타다카츠는 항상 자신에게 있어서 최적의 사양으로 싸웠던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는 해도 , 자루 길이를 바꾸었음에도 불구하고, 변한 길이에 대해 즉각적으로 대응해 잘 다루었다는 것이니, 굉장하다.
역자 주1 - 미카와 문수, 미카와는 지방이고 문수는 보통 문수보살의 줄임말로 그냥 문수라고 하는데. 정확한 뜻은 모르겠습니다. 미카와의 문수같은 사람이다란 표현인지. 혹은 어떤 다른뜻인지... 참고로 어사 박문수의 문수도 같은 한자이다(아마도..ㅡㅡ)
토우노 카시라(주1)와 혼다 헤이하치
타다카츠의 무용은 일본 전국에 널리 알려져 , 적에게 무서움의 대상인 동시에 경외의 대상도 되었다. 그 무용은 전국시대 팬이라면 마음이 동할 이야기가 많으니, 몇개만 소개해 본다.
특히 유명한 것이 이토코토자카 전투일 것이다. 전투에서 군의 최후미는 적을 물리쳐야 되는것과, 본대의 후퇴를 도와야 되는 것. 결사의 각오가 있어야 하는 자리이다.
1572년 , 타다카츠는 후퇴하는 이에야스군을 지키기 위해서 이토코토자카에서 맨뒤를 맡아, 훌륭하게 이에야스군의 후퇴를 성공시켰다. 일설에 의하면 , 톤보키리를 손들고 최후미에 남은 타다카츠가 , 오직 혼자서 바싹 뒤쫓아오는 타케다군을 격퇴했다고 한다. 그리고 철수한 타케다군은 한 장의 팻말을 남겨 있었다. 거기에는 , 「이에야스에게 과한 것이 두가지 있으니, 토우노 카시라와 혼다 헤이하치」라는 광가(주2)가 쓰여져있었다고 한다. 물론 , 여기서 말하는 혼다 헤이하치 라는 것은 , 혼다 헤이하치로타다카츠다.
또 오다 노부나가가 「일본의 장비」라고 칭한 도요토미 히데요시도 「서쪽은 다치바나 무네시게 , 동쪽은 혼다 타다카츠」라고 칭찬했다고 한다. 그 밖에도 아네가와의 전투에서 아사쿠라군 1만이 이에야스 본진으로 쳐들어가는 국면에서는 , 아사쿠라군을 향해 혼자서 말을 타고 공격을 감행한 대담함도 보여주었다. 그리고 이것이 계속되어 이에야스군은 , 불리한 전황을 타개하였으니, 톤보키리의 위력도 대단하였고 , 그것을 쓰는 자도 천하 무쌍의 남자라 할수 있겠다.
필자는 , 타다카츠의 매력은 토쿠가와가의 충신으로서 단지 용맹만 있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혼노지의 변에서 노부나가가 죽었을 때에 그뒤를 쫓으려 한 이에야스를 간언(충고 - 의미상 설득이 더 맞을듯) 하였고, 세키가하라 전투에서는 산에 진을 친 모리 군을 보고 , 싸우는 마음이 있으면 평지에 포진 할 것이라며, 모리가 움직이지 않을 것을 간파했다고 전하고 있다.
타다카츠는 , 일생을 토쿠가와가에 바쳤는데, 딱 한 번만 자신의 뜻을 말했던 적이 있었다. 그것은 세키가하라 전투의 전후 처리 일로 세키가하라 전투에서 사나다 마사유키/유키무라 부자는 서군에 의해 이에야스를 여러 번 고초를 겪게 했다. 그 때문에 이에야스는 , 두 명을 죽이려고 하였으나, 그것을 막은 것이 타다카츠였다고 한다. 타다카츠의 딸이 사나다 노부유키에게 시집갔기에 마사유키와 유키무라는 사위의 아버지와 남동생에 해당하기에 , 타다카츠는 ,(아마도 딸을 생각해) 이를 구하려고 했던 것이다. 그렇지만 들어주지 않던 이에야스에게, 마지막으로 「경과 일전 겨룰 때까지」라고 잘라 말했다고 한다. 이에야스와 함께, 40년 이상 자신의 주장과 뜻을 말했던 적이 없는 타다카츠의 행동을 본 이에야스는 , 생각을 고치고 마사유키와 유키무라 두명을 살려주었다고 한다.
주1 - 토우노 카시라(唐のかしら) : 이에야스가 모은 야크(yak)의 눈썹을 모아서 만든 투구(혹 모자)란 뜻이다. 굳이 해석을 하지는 않고, 원어 그대로 썼습니다. 야크는 쉽게말하면 들소 라고 보면 되지만. 직접검색해보시길 바랍니다.
주2 - 광가 (狂歌) : 모든 의미를 적을수는 없고, 위에 쓰인 문구는 낙서의 의미라고 보면됩니다. (혹은 문구)
<차회예고 : 피나카>
출처 : www.4gamer.net 글 : Murayama 번역 : ffotag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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