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6호 : 칠지도

2021. 10. 21. 18:07검과 마법의 박물관/무기편

이소노카미 신궁과 칠지도
 
 특이한 형상을 한 도검은 온 세상에 있지만, 일본 것으로 유명한 것이 칠지도다. 이 검은 「나나츠사야노타치」 「로쿠사노호코(육차모)」라고도 불리고 있어, 전체 길이 74.9cm. 철로 만들어진 도신 좌우에 3개의 송곳니와 같은 지인(가지 날)이 나와 있다. 너무 특이한 형상에, 눈이 휘둥그레 지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칠지도가 세상에 퍼지는 계기가 되었던 것이, 이소노카미 신궁의 발굴때문이다. 이소노카미 신궁이라고 하면, 이전에 소개한 포도어혼검 (후츠노미타모노츠루기)이 보관되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 신사이다. 이소노카미 신궁에는 금족지(주1)로 불리는 특수한 장소가 있어, 여기에는 다양한 보물이 안치되고 있었다. 메이지 시대에, 이소노카미 신궁의 대궁사인 스가 마사토모가 보물의 확인/점검을 위해서 보물고에 발을 들여놓았는데, 그 때 눈이 띄었던 것이 칠지도였다. 독특한 형상은 물론, 도신의 앞뒤에는 금상감으로 문자가 새겨져 있었다. 원래 학자이기도 한 스가 마사토모는 흥미를 느끼며, 도신에 새겨진 금빛의 문자를 확인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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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면 : 泰(和)四年五月十六日 丙午正陽 造百練鐵 七支刀 (出) 百兵 宣供供候王 0000作 - 태화 4년 5월 16일 병오날중에 백련강철로 칠지도를 만들었다. 이는 나아가 백병을 물리칠 수 있는 것이므로 후왕에게 보내준다. 0000가 제작한 것이다.

뒷면 : 先世以來 未有此刀 百濟王世(子) 奇生聖音 故爲倭王旨 造傳示 {後} 世 - 선세 이래로 이와 같은 칼은 없었다. 백제왕세(자) 기생성음이 왜왕자를 위하여 만들었으니 후세에 길이 전하여 보일지어다.

( ):새겨진글 0: 파악불능 

-출처 네이버지식인, 칠지도 금상감 부분만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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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연재분의 한자(?표시는 한자가 인코딩 때문에(맞나)표시가 안되는 것음,■ 없는 부분)

表:秦■四年五月十六日丙午正陽造百練鋼七支刀■?百兵宜供供侯王■■■■作

裏:先世以?未有此刀百?王世■奇生聖■故?倭王旨造?■■世

 군데군데 문자가 빠져 있어 읽을 수 없지만, 어떻게든 상기의 문자는 읽을 수 있었으므로 기록했다고 한다. 후에, 많은 학자들에 의해 해독되어 이 검 ( 칠지도 )은, 태화 4년에 백제왕 세자가, 왜왕을 위해 단련했다고 해석되었다. 더욱이 이것은, 일본 서기에 등장하는 칠지도와 동일한 물건이라 해석되었던 것이다. 일본 서기에 의하면, 칠지도는 칠자경과 곡옥 등 보물과 함께, 백제왕이 신공황후에게 준 보물이며, 왜국과 백제의 동맹 증거인 것 같다.

주1 - 금족지(禁足地)- 한자 그대로 나뒸는데. 말그대로 발을 금하는 땅, 쉽게 들어가서는 안 되는 지역으로 알면 된다.

 칠지도와 판타지

 이대로 이야기를 진행시키면 역사 이야기가 되버려, 아무래도 판타지적인 것이 없다. 동맹의 증거라고 하는 사실은 접어두고, 판타지적인 해석을  해보면 우선 주목하고 싶은 것은, 칠지도가 칠자경과 곡옥 등과 함께 주어진 점이다.
 아시아권에서 널리 퍼진 도교에서는, 검이나 거울은 특별한 존재이다. 고서를 보면, 거기에는 귀신을 없애기 위해 검을 휘두르고, 거울을 사용해 보이지 않는 것을 보고, 또 거울로 악귀로부터 몸을 지키는 도교의 도사의 모습을 볼 수가 있다. 또 도교에서는, 도사가 제자에게 오의를 전수할 때에, 검, 거울, 곡옥, 이 3개를 주는 일도 있었다고 한다. 즉 검, 거울, 곡옥은, 파사의 힘을 가진 도구로서 중요시되었던 것이다.
 검, 거울, 곡옥에 들어간 것은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일까. 그것은 고대 신앙이 크게 관계되어 있다. 원래 고대 신앙은 자연을 대상으로 하고 있었다. 하지만 자연은 명확한 형태가 없어, 눈에 보이지 않는 것도 많았다. 거기서 신이 머문다고 여겨지는 것을 신앙하게 되었다. 이것이 「 신체」이다. 그리고 검, 거울, 곡옥은, 모두 신이 머무는 신체로서 생각되었던 것이다. 그것은 쿠사나기의 검 ( 초치검 ), 팔지경 ( 야타노카가미 ), 팔척경곡옥 ( 야사카니노마가타마 )이 있다. 「삼신기」도 마찬가지로, 이것들은 신체로서 아쓰타 신궁에 모셔지고 있다. 이러한 것을 생각하면, 칠지도는 동맹이 증거로 삼았을 뿐만이 아니라, 신이 머무는 신검이었다고 생각해도 좋을 것이다.
 여러 가지 조사했는데, 칠지도의 지인(가지 날)이 용신(龍神)의 이빨을 상징함으로 용신이 머문다든지, 도교에서는 북두칠성에 승리 기원을 하는 것이 많아, 칠지도는 북두칠성의 힘을 봉할 수 있다고 하는 흥미로운 제설도 발견되었지만, 내용에 너무 차이가 있어 , 명확한 칠지도의 모습을 발견되지는 않았다. 그렇다고는 해도, 단순한 동맹의 증거뿐인 검은 아닌 것이 분명할 것이다.
 현재, 칠지도는 국보로서 이소노카미 신궁에 비장 되고 있지만, 유감스럽게도 일반 공개는 되지 않는다.


<차회예고 : 에펜담>

출처 : www.4gamer.net            글 : Murayama                     번역 : ffotag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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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외로 글중에선 딱히 별 내용이 없네요.
역시 판타지 내용이 주라서 그런가....
전에도 밝혔지만 이 글을 보는거 보다는 역사스페셜을 보는게 나을 겁니다.

우선 해석부분인데. 네이버에서 퍼왔는데도..좀 마음에 안드는군요.
네이버 내용은 사실 일본측에서 발표하는 내용과 다를바 없는 내용입니다.
국내주장이라도 결국은 한글자 차이라는 것과 문체의 차이뿐입니다만..
후(侯)와 왜(倭)자가 있습니다. 약간 비슷하죠.
문제는 뒷면의 끝쯤에 나오는 倭王(왜왕)자 인데..
(앞면의 후왕은 일본,한국 둘다 동일할 것이다.장담은 못하겠지만)
칠지도가 처음 발견됐을 때 다 녹슬은 물건인데 그 글자가 명확하게 보인다면 말이 안되죠.
많은 글자들을 찾아 대충 맞는 것 같은데 그래도 결국 자국적으로 해석하기 마련인데...

우리나라의 주장은 倭王(왜왕)이 아니라 侯王(후왕)이란 것입니다.
후왕, 즉 쉽게 말해 제후란 말이죠. 앞면에서도 쓰인 후왕도 있고.
일본역시 고대 왜나라는 당시에는 통일된 나라가 아니라 소국에 불과한 나라였습니다.
그래서 백제와 왜국이 동맹을 맺었고 왜국은 약간 속국과 비슷한 위치라고 합니다.
멀리 볼것도 없이 신라와 당나라, 고대시대의 한국과 중국의 관계를 생각하면 되겠죠.
또 한자의 문체를 봤을 때 윗사람이 아랫사람에게 하는 문체입니다.(한글문체아님)
고로 백제가 왜국에 하사했다는 것이 국내주장입니다.

일본측 주장은 말그대로 백제가 왜왕을 위해 주었다는 주장입니다.
일본의 역사왜곡중 하나인 임나일본부설 등을 거론하며 왜왕을 위해 주었다는 것.
위 글에는 짤막하게 신공황후에 대해 나오는데 이 신공황후가 임나일본부설의 핵심인물인데.
임나일본부설을 짧게 정리하자면 왜나라가 백제,신라,가야 즉 남부지역을 지배하였고
가야에는 일본부라는 기관이 있다라는 내용입니다.

더 이야기 하면 끝도 없을테고. 국사학자도 아닌 사람이 적어봐야 별로 좋을것도 아닐테니
여기서 그만 적어 볼까 합니다..
역시나 글이 길긴 길군요..ㅡ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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