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10. 19. 23:27ㆍ검과 마법의 박물관/무기편
**프랑스의 서사시 「롤랑의 노래」 **
「롤랑의 노래」는 11 세기경에 성립한 프랑스의 서사시로, 778년에 발발한 론스보의 싸움을 테마로 한 작품이다. 그렇다고 해도 역사적 사실만으로 구성되어 있는 이야기는 아니고, 음유시인등의 이야기꾼에 의해 각색이 되어 일대 비극으로서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있다.
카로링의 초대왕인 피핀의 아이로, 프랑크 국왕의 샤를마뉴(칼 대제. 724-812)는, 그 때 에스파니아로 원정 가고 있었다. 적은 에스파니아왕 마르실로, 이대로 가면 에스파니아의 평정도 시간 문제일거라고 생각되고 있던, 그런 때, 에스파니아의 사자가 화친을 신청해 온다. 그 내용은, 샤를마뉴가 철퇴해 준다면, 인질이나 공물을 내밀 뿐만 아니라, 마르실도 프랑크로 동행해 크리스트교에 개종 한다고 하는 것이었다.
화친에 관해서 회의가 열렸지만, 샤를마뉴측에서는 의견이 두개로 나누어지게 된다. 용사 롤랑은, 일찌기 프랑크 왕국으로부터 2명의 사자를 보냈을 때, 에스파니아에서 살해당해 버린 예를 들어 화친을 신용해서는 안된다고 주장하는데 대해, 롤랑의 의붓 아버지 가누론은 좋은 조건이기 때문에 받아야 들여야다고 주장했다.
결국, 다수결로, 화친을 신청받아들이는 것으로 이야기는 결정되지만, 다음에 문제가 된 것은 누가 사자로서의 임무에 오를까 였다. 그것은 사자는 목숨을 걸어야 하는 일이며, 살해당할 가능성이 있었기 때문이다.
거기서 샤를마뉴의 12 기사로부터, 롤랑, 올리비에 등이 후보로 뽑지만, 샤를마뉴는 「12 기사를 사자로서 사용할 수는 없다」라고 단언해, 롤랑에게 누군가를 추천해보도록 하라고 이야기한다. 거기서 롤랑은, 화친 추진파의 급선봉이며, 의붓 아버지이기도 한 가누론을 추천. 하지만, 이것을 안 가누론은 「이러한 임무에 나를 추천 한다는 것에, 일평생 롤랑을 원망할 것이다」라는 대사를 남겨, 사자로서 나갔다.
그런데 가누론은, 사자로서 책임을 다하는 한편, 에스파니아의 장군 브란칸드란에 접근하여, 「롤랑을 죽이면 , 프랑크 왕국은 에스파니아에서의 발판을 잃을 것이다. 한 번 항복을 받아들여 철퇴하는 샤를마뉴군을 배후에서부터 덮치면, 롤랑이라하더라도 잠시도 지탱하지 못할 것……」이라고 진언 해, 인질과 공물을 가지고 샤를마뉴의 아래로 돌아갔다.
무사히 샤를마뉴에게 인질과 공물이 도착되자, 프랑크 왕국으로의 철퇴가 결정. 그리고 최후미를 진군 하는 부대를 결정하게 되었다. 회의의 자리에서 「누가 맨뒤를 맡는가?」라고 하며 샤를마뉴가 근처를 둘러보았을 때, 가누론은 롤랑을 추천 했다. 이러한 형태로 추천 하면, 롤랑은 기사도의 정신에 근거해 맡지 않을 수 없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서였다..
<일러스트 : 츠루미 토시유키>
**론스보의전투 **
철퇴하는, 샤를마뉴는 롤랑에게 2만의 군사를 빌려 준 것 외에, 로란을 제외한 12 기사를, 그 아래로 배속시켰다. 하지만, 벌써 이 때 에스파니아의 10만에 달하는 군세가 압박하고 있었고, 론스보 고개에서 에스파니아군과 롤랑의 군은 검을 겨루게 되었다.
이 전투에서 롤랑의 모습은, 순금의 갑옷을 휘감은 애마 베이얀치프에 올라타, 오른손에는 샤를마뉴로부터 받은 성검 듀란달, 왼손에는 각적(주1) 오리판을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또 전투의 직전에는, 12 기사의 하나인 츄루팡 대승정(원문이 대승정이라 그대로 썼습니다만. 아무래도 대신부라고 표현하는게 나을지도)이 신의 이름의 병사들을 축복해, 2만의 병사들의 사기를 높였다고 한다.
전쟁의 발발하자, 12 기사의 한명인 올리비에는 롤랑에게 「5배의 병력차이가 있으니 불리한 싸움은 해서는 안된다. 각적을 불어 구원을 청해야 한다」라고 진언 하지만, 롤랑은 그러한 행위는 기사도에서 벗어난다고 거절해, 에스파니아군으로 돌격을 개시했다.
다행히도 병사들의 사기는 높고, 12 기사의 활약도 있어 롤랑은 적군의 격파에 성공. 승리를 올리지만, 그 때 에스파니아왕 마르실의 본대가 도착. 이번은 20만의 군사를 상대로 싸우게 되어 버렸다. 용맹 과감한 롤랑군이었다고는 해도, 과연 10배의 병력차이를 뒤집을 수 없다. 죽음을 각오 한 롤랑은, 각적을 불며 돌격을 감행 했던 것이었다.
12 기사는 죄다 전사했고, 만신창이가 된 롤랑은 성검 듀란달을 적에게 건네주지 않을려고 근처의 산정상에 있던 대리석에 내려쳤지만, 검에는 상처 하나 나지 않않고, 대리석이 두동강이가 되어 버렸다. 검을 부러뜨리는 것을 단념한 롤랑은, 듀란달과 각적 오리판을 두고, 적을 응시한 채로 절명. 천사 가브리엘에 의해 하늘로 이끌렸다고 한다.
**크리스트교의 상징, 성검 듀란달 **
롤랑이 거둔 듀란달은, 황금의 무늬을 가지는 양날검의 한 손검인 것 같다. 결코 접힐 것은 없고, 대리석도 자른 것에서, 상당한 명검인 것은 추측할 수 있다.
출전에는 여러가지의 설이 있다. 샤를마뉴가 프랑크왕에 즉위 한지 얼마 안된 무렵, 롤랑의 앞에 천사가 나타나 「왕에게 이 검을 하사해라」라고 검을 건네주며 사라져 버렸다. 롤랑은 이 사실을 전하지만, 샤를마뉴는 「너는 이 검을 사용해 나를 돕는게 좋겠다」라고 말해 롤랑에게 주었다고 하는 설. 듀란달은 요정이 단련한 검으로, 롤란이 유톰다스라고 하는 거인과 대결했을 때에 입수해 샤를마뉴에 헌상 하자, 그 공적을 기린 왕이, 로란에 하사했다고 하는 설. 그 밖에도, 그리스의 영웅 헥토르가 사용하고 있던 검으로, 후세에 알몬트라고 하는 기사와 롤랑이 대결해 손에 넣었다고 하는 설이 있다.
이와 같이, 검의 입수 경위만으로도 복수의 설이 있는 것을 생각하면, 롤랑의 노래는, 본연재의 제1회에서 채택한 아더왕전설과 같이, 복수의 이야기를 조합해 창작되었을지도 모른다.
또 신앙의 역사를 생각하면, 크리스트교의 유포에 수반해, 사람들의 신앙의 대상은 민간 전승등에서 크리스트교로 옮긴 것이지만, 실은 듀란달도 그러한 영향을 받고 있어 처음은 요정이 단련한 검으로 되어 있었지만, 추후 천사의 선물로 변화했을지도 모른다.
덧붙여서 천사설의 경우는, 듀란달의 황금의 무늬안에는, 성 바질의 피, 성 피에르의 이빨외, 롤랑의 수호 성인인 성 듀니의 모발, 성모 마리아의 의복의 일부라고 하는 성유물을 납입할 수 있다라는 것. 이러한 일로부터 생각하면, 듀란달은 크리스트교를 상징하는 검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주)1.각적 : 원 한자어로는 짐승의 뼈로 만든 피리란 뜻.즉 뿔피리
<차회예고 : 브류나크>
출처 : www.4gamer.com글 : Murayama 번역 : ffotag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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